'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다' 감탄이 절로 나오는 명카피다. 

우리는 모두 유년기를 지나 청춘을 맞이하며 각자의 연애사를 시작한다. 

靑春... 

곱씹을 수록 참 아름다운 말. 

곱씹을 수록 기억은 더욱 더 아련해지고 기억의 가치는 추억으로 치환되어 그렇게 모두의 마음속에 한칸을 차지하고 있다.


 대만영화 [그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소녀](이하 그시절, 그녀)는 남고생의 첫사랑을, [건축학개론]은 공대생의 첫사랑을 그렸다. 두 영화는 남자의 시각을 견지한다는 측면-청춘멜로 중 몇안되는-에서 공통분모를 가진다. 추억을 다루며 엇갈리는 첫사랑이라는 언뜻보면 비슷해보이는 골격이지만 그 사이사이를 채우는 요리법은 엄연히 달랐다. 



(본글에는 영화내용 누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시절, 소녀]는 첫사랑의 결혼식으로 시작한다. 영화내내 첫사랑과의 골인이냐 아니냐를 의식하며 주인공을 응원하게 된다. '그녀'가 함께있었기에 빛나던 '그 시절'이기 때문에 주변에 있을법한 친구 캐릭터가 여럿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캐릭터 하나하나가 섬세했고, 주인공 이외의 캐릭터의 분량도 단지 주인공을 보조하기 위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추억'이라는 전체적인 맥락에서 기여도가 저마다 있었다. 


 당황스러웠던 것은 거칠것 없는 사춘기 날것 그대로의 표현법이랄까. 집안에서 전라차림이라든가, 수업에서 총질이라든가, 별명이 아예 발기인 주인공 친구까지..  '정제되지 않은' 남고생 주인공만큼이나 거칠것 없었다. 베드씬 하나없었는데도 과감하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잘만든 수작 청춘물이 되는데는 장벽이 될 순 없었다. 대놓고 '남고생을 겪은 남성들'의 공감대를 위한 시선이지만 첫사랑, 판타지, 진로고민 등 남자사이에서 흔하게 통용되는 학창시절 모든것들-성(性)적 소재까지도-것이기에. 나머지 공부를 하면서 싹트는 고등학교 첫사랑은 티격태격하면서도 마음이 가는 로맨스만화의 한장면처럼 풋풋하고 꽤나 패기넘쳤고 아련했다.


 [건축학개론]보다 긴 시간을 담아내지만 시간 분배는 고등학교>대학교>현재 순으로 현재는 결혼식외에는 등장하지 않고, 대학시절은 공대생의 패기가 여전히 들끓었지만 여주인공 션자이와 운명적인 재회 이후 로맨스만화가 깨지고 돌아온 현실은 서로가 엇갈리면서 극전개가 쳐져버렸다. 아마 그게 보고싶지 않은 현실이었기 때문이었을 지도.

 그리고 흔히들 졸업후 전공과는 다른 노선을 밟는 것처럼, 주인공도 떠오르는 인터넷 작가가 된다. 그리고 그녀의 옆에 자신이 아닌 다른이와 올리는 결혼식에서 격렬한 키스(!)를 하며 그녀를 보내준다. 현실과 영화적 판타지가 교차되는 엔딩이었다.






 [써니]에 이어 성공한 추억팔이 영화. 90년대를 추억을 배경으로 한 첫영화이기도 하다.  [건축학개론]은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빈집이지만 자신의 유년기 시절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옛집을 둘러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전공을 살려 건축가를 하고 있는 첫사랑을 찾아오면서 시작한다. 등장인물도 한정적이지만 [그시절, 소녀]가 학창시절 전방위적 추억이라면 [건축학개론]은 첫사랑의 추억이란 틀이 맞춰져있어 주변인도 모든 에피소드의 흐름도 첫사랑 전개를 위해 집중돼있다. 잘사는 선배는 여자와 어찌한번 해보려는 비법을 알려주고 간간히 등장하던 연애에 도가 튼 개성만점의 납뜩이는 연애비법을 설파하며 관객들 웃음을 담당한다.


 

 [그시절, 소녀]의 주인공 커징텅과 [건축학개론]의 승민이 경험한 첫사랑은 둘 다 풋사랑에 불과했지만 첫사랑 그녀를 향한 마음의 무게와 입장은 판이하게 달랐다. 션자이는 인생의 2막을 함께할 남자와의 결혼식으로 끝맺으며 이루어질 수 없는 첫사랑을 영화적 판타지를 놓치지 않았던 반면 서연은 의사와 3년만에 이혼을 앞둔 스크린밖 지극한 현실에 서 있었다. 커징텅은 고교-대학시절 전부를 통틀어 션자이를 향해 가슴앓이하면서도 열렬하게 일편단심이었고, [건축학개론]의 승민은 오해가 얽히면서 가슴앓이하다가 '꺼져줄래'라는 냉정한 말로 내쳐버렸고 지금 그의 옆에는 결혼할 애인도 있다. 오히려 십년전 첫사랑을 고스란히 간직하며 그리워하며 다가온 건 서연쪽이었다. 대학시절 승민이 서연을 위해 만들어줬던 건축모형을 아직도 간직하는 서연에게 승민은 화를 낸다.(알고보니 그도 CDP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었다) 심지어 첫사랑을 썅년으로 기억했던 그였다. 되고싶었던 아나운서도 떨어지고, 남편과 이혼해서  돌아온 서연이 술마시며 좆같다며 푸념할때 그렇게 안쓰러울 수가 없었다.


 같은 주인공을 과거와 현재를 나누어 더블 캐스팅해서인지 분량을 반으로 나누어 교차편집 했는데, 현재의 승민은 담배와 일에 찌들어 살고, 병환에 계신 아버지를 보살피는 서연이라는 흔해서 직설적인 현실성 때문인지 추억을 보려했던 나의 목적성때문인지 굳이 시점을 반반할 필요가 있었는가 싶다.





 첫사랑은 성공할 수 없다는 명제에 대해서 [그시절, 소녀]는 정신연령 차이랄까, 어린시절의 치기어린 행동들이 반복되면서 오는 충돌로 접근했다. 한편 [건축학개론]은 친구와 연인사이의 묘한감정에서 용기내어 고백하려는 찰나, 목격한 선배와 얽힌 오해에 확인하고 싶지 않은 진실을 덮어둔 채 단념하고 다가오는 그녀를 차버린다. [건축학개론] 역시 남자의 시선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나레이션으로 승민의 마음 전부를 읊어주진 않지만, 그 사건 하나만으로 두근거리며 하루종일 기다렸던 그녀를, 다가오던 그녀와의 관계를 단절시킬만큼 보통 남자들의 사고의식을 반영한 중대한 사건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영화적 판타지를 십분 살린 [그시절, 소녀]는 첫사랑의 상대로 반짝이는 그녀의 축복을 빌어주는 남자의 순정을 그리지만, [건축학개론]은 과거엔 강남으로 이사가자던 철없음과 자신을 찾아온 첫사랑을 마주하자마자 줄줄이 호구조사하기 바쁜 모습을, 서연은 스무살에도 돈많은 남자와 결혼할거라던 대사로 그녀를 속물로 묘사했다. 그리고 승민이 애인이 없었다면 모를까 이혼을 앞둔 시점에서 첫사랑을 찾았다는게 의도의 순수성을 의심하게 했다.






 두 영화에는 계급이 출현한다. [그시절, 소녀]는 학창시절 소재에 걸맞게 성적에서 오는 계급을 역설한다. 모범생 션자이와 사고뭉치 커징텅은 대입을 앞두고 같이 공부를 하며 그 격차를 좁혀간다. 그리고 대입시험후 함께했던 친구들과 성적에 따라 다른대학으로 뿔뿔이 헤어진다. [건축학개론]은 빈부격차에서 오는 계급이 과거와 현실을 관통한다. 첫수업에서부터 선배는 강남을 들먹이곤했고, 브랜드가 자신을 상징하는 것처럼 줄기차게 입고다녔던 GUESS가 사실은 GEUSS였던 것도, 시장에서 순댓국집하는 어머니, '압서방', 늦은시간에 강북 못가겠다고 승차거부하던 택시기사... 현재도 미국 유학을 앞두고 원룸에서 살아야하는 자신의 경제력과 비교되는 애인의 경제력, 그런 자신에게 재개발로 수십년한 가게 판 통장을 건네는 어머니... 


스크린 안팎을 막론하고 첫사랑이란 게 잠시나마 추억에 젖어볼 순 있어도 어쨌든 지금은 그때로 돌아갈 수 없으니... 첫눈 오던날 서연은 약속을 지키려 공릉동 빈집을 홀로 찾았던 기억을, 지금와서 승민 역시 지켰다는 것을 알았다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세월만큼이나 멀어진 마음의 간극을 추억이 채워주기엔 지나간 옛감정은 힘이 없다. 문득 햇살이 드리우듯 파도가 일렁이듯 바람이 스치우듯 마음속 한켠에 자리하며 추억하는 것이 첫사랑의 전부라 해도.


 [그시절, 소녀]는 학창시절 모아둔 보물상자를 꺼내보며 키득거리듯 위트 넘치게 표현했다면, [건축학 개론]은 옛시절을 추억하며 기울이는 한잔 술처럼 담담했다. 휘몰아치는 긴장감이나 갈등 없이 바람이 한번 불었다 잠잠해지듯이. 두 영화 모두 구성이나 전개며 이렇다할만큼 뛰어나거나 신선함 없었지만, 대중적인 감성코드를 제대로 파고들었다는 측면에서 대중성은 철저히 충족시켰다. 그러나 대중성외엔 수작이라고는 글쎄...




Posted by 율리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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