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들. 성향, 취향, 기호, 스타일, 패션, 취미, 습관, 습작, 가치관, 말투, 목소리, 눈빛, 표정, 관심사 그리고 내사람. 국어사전에서는 '한개인이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성 또는 그 특성을 가진 존재'라고 정체성을 정의한다. 나는 '한 개인으로서 타인과 구분할만한 [개성]을 가진 본질 또는 그 존재'라고 본다. "네 정체(Identity)가 뭐야?"라고 하지,"네 개성(Individuality)이 뭐야?"라고 하지 않으니까. 그러므로 본글에서는 '내가 나일 수 있는 정체성(Identity)'을 뜻한다.


몇년전부터 웹상에서는 [자존감]이라는 사전에도 없는 단어가 [자신감]과 [자존심]과 비슷한듯 또 다른 개념으로써 급부상했다. 자존감 즉 자아존중감(自我尊重感)이란,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소중한 존재라고 자기 스스로를 대하는 마음'으로, 타인이 보는 자신의 사회적 관계에서의 우열을 의식하는 [자존심]이나 긍정적인 부분은 상통하나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라는 자신과 타인을 의식하는 [자신감]과 다르게 오로지 본인 스스로에 대한 개념이다.

[자존감]에 파생하여 [자존감 도둑]이란 개념도 정립됐다. [자존감 도둑]이란 상대의 잘못을 지적하거나 단점을 부각시키는 말로 타인의 자존감을 떨어뜨리고 빼앗는 사람을 뜻한다.



[자존감 도둑]이 대상의 감정을 공격해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존재라면, [정체성 도둑]은 대상의 정체성을 모방함으로써 정체성을 무너뜨리고 주변의 관심을 빼앗는 존재다. 악성 정체성도둑은 대상의 사회적 관계까지 소외시키기도 한다.



△함께 붙어다니며 마음에 드는 얼굴을 빼앗는 이토 준지作 [얼굴도둑]



1. 모방

정체성 도둑은 마음에 드는 대상(혹은 동경의 대상)의 개성을 모방한다. 화장품에서 화장법, 옷이며 헤어스타일, 개성있게 하고 다니는 아이템(핸드폰줄, 악세사리), 말투부터 SNS문체, 공부방법 내지는 대외활동까지. 친밀도가 높을 수록 동경의 대상의 인간관계를 그대로 자신의 인간관계로 편입하여, 어느순간 동경대상을 배제하고 정체성도둑만의 인간관계로 구축한다.


2. 심리

처음엔 친해지고 싶다, 좋아보이는 동경의 대상처럼 되고싶다는 생각은 동경이란 출발점은 같지만 [정체성 도둑]과 단순 추종자의 차이는 모방을 '인정'하는 여부와 동경의 대상을 '공격'하는가에 다르다. 좋아해마지 않고 존경하는 대상은 언제나 자신의 롤모델로 꼽으며 그를 쫓아 따라했다고 숨김없이 전면으로 인정하며 드러낸다. 그러나 [정체성 도둑]은 '어쩌다 겹치는 것', '흔한', '유행'이라며 자신이 따라쟁이란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외적 모방 뿐만 아니라 가치관이나 관심사 같은 내적 모방까지할 경우 '원래 그랬다'라며 그런 취향에 그런 생각에 그런 관심사적 활동을 표출할 계기가 동경의 대상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인정한다는 자체가 '대등한 자신'이 아닌 추종자는 '누군가의 아래'에 서는 열등감을 인정하는 꼴이기 때문에 상당히 두려워한다. 원래의 자신을 부정하고 모방한 자신을 원래의 자신이라고 믿고 주장한다. 이는 공상허언증(空想虛言症,Pseudologia Fantastica) 및 리플리 증후군(Ripley syndrome)과도 일맥상통한다.  


 공상허언증(空想虛言症,Pseudologia Fantastica)은 안톤 브뤼크가 처음 주창한 개념으로, 자신이 만들어 놓은 거짓말을 그대로 믿는 습관을 말한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거짓을 말하는 것을 의미하며, 정상인이라도 의식적으로 거짓말을 반복하는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 단순히 허풍이나 과장이 심한 경우와 달리 허언증은 자신이 왜곡한 사실을 스스로 진실이라고 믿는다. 따라서 거짓말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리플리증후군(Ripley Syndrome)이란, 자신의 현실을 부정하면서 허구의 세계를 진실이라 믿고 거짓된 말과 행동을 반복하게 되는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뜻하는 심리학 용어. 

 성취욕구가 강한 무능력한 개인이 마음속으로 강렬하게 원하는 것을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사회구조적 문제에 직면했을 때 많이 발생한다.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어 열등감과 피해의식에 시달리다가 상습적이고 반복적인 거짓말을 일삼으면서 이를 진실로 믿고 행동하게 된다. 

 패트리샤 스미스 소설 '재능 있는 리플리씨'의 주인공 '리플리'는 거짓말을 현실로 믿은 채 환상 속에서 사는 인물에서 유래했다.


따라쟁이란 걸 인정하는 순간, 열등함을 인정하고 자존심이 상처 받는다고 믿기때문에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모방을 부인한다. 의식적으로는 SNS나 핸드폰·가방·필통을 관음하려들면서 좋아서 비슷한걸 구매하는 자신을 의식하는 거고, 무의식적으로는 평소 하고다니는 걸 '알고 싶다'는 생각은 없으나 막상 구매결정상황 또는 행위시 비슷한 용품을 구매하거나 비슷한 행동을 하는거라 '어쩌다', '우연히', '자연스럽게'가 성립되고 부지불식간에 본인이 [정체성 도둑]임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3. 공격

 같은 생활영역에 있는 사람 안에서 모방이 지속되면, 동경의 대상도 인지하는 순간이 온다. '미묘하게 비슷해', '나다운 행동'을 타인에게서 발견하는 것. 뿐만 아니라 다른사람까지 혼동하기 시작하면 정체성 문제는 수면위로 오른다. 제3자의 입에서 '쌍둥이냐', '따라하느냐' 등의 말이 나올 때 쯤 [정체성 도둑]은 한 때 마음속으로 동경의 대상이었음을 철회하고 정색하며 피장파장의 논리로 맞선다. 열등하지 않음을 피력하기 위해 예민하게 반응하며 지지않으려는 태도가 두드러진다. 친목관계에서 발생하는 보통 발생하는 승부욕과 여기서 말하는 비교우위에 대한 자존심은 다르다. 전자는 스포츠나 소소한 내기에서 지지 않으려는 기질적인 것이고, 후자는 인간관계에서 우열을 가리고자 하는 의식이 팽배함을 의미한다. 인간관계의 목적은 어울리면서 가지는 소속감, 우정, 존중감이지 경쟁우위가 아니다. 더욱 심화되면 자신이 원조임을 인정받으려 든다. 원조가 둘일 순 없으니까. 이 과정에서 롤모델을 배척하거나 소외시키려는 현상도 나타나는데 친목을 다지며 스스럼없이 알아낸 롤모델의 단점이나 약점을 동원 해서 공격한다. 최악의 경우 롤모델의 이성친구를 유혹해서 빼앗아 우월감을 고취시키는 경우도 있다.


4. 폐해

 추종자는 자신의 성공여부와 무관하계 영원히 동경의 대상이라면, [정체성 도둑]은 뛰어넘을 수 있는 존재라고 인식한다. 자신이 가진 것을 보다 타인의 장점과 개성을 매력적으로 생각하고 내심 라이벌로 상정, 경쟁의식을 느끼고 동기부여를 자극하여 [정체성 도둑]이 발전하는 계기가 되는셈.

이 때 동경의 대상이 여전히 인기인이거나 독창적 개성을 가진 사람이란 인식이 독보적이라면 [정체성 도둑]은 한낱 따라쟁이로 묻힌다. 그러나 관심이나 입지가 비등하거나 [정체성 도둑]이 추월한다면 롤모델은 정신적 치명타를 입는다.

 특히 자신만의 고유한 세계관을 모조리 훔쳐 자기행세를 하면서 유명세를 탄다든가, 같이 어울렸던 사람이 디자인이나 그림체를 모방 또는 평소 구상하던 아이디어를 베껴 사업을 대박친다든가 하는 사회적 박탈감부터 같이 친분을 공유하던 관계에서 묘하게 한 두명이 이탈하더니 결국 인간관계를 고립시키는 관계 파괴까지. 이에 엄청난 배신감과 박탈감을 느끼면서 그동안 스스로 쌓아온 자신을 잃어버리고 인간관계까지 빼앗겼다는 허무주의와 무력감에 빠지지만 어디 하소연조차 할 수 없다.

 

5. 결론

 인과응보? 동화속에서나 가능한 이야기고. 현실에선 잘나가는 [정체성 도둑]에게 가할 인과응보는 커녕 오히려 동경의 대상이 전전긍긍하는 관계로 역전될 수 있다. 의식하면 의식할 수록 피폐해지는 쪽이 지는 거. 일단 [정체성 도둑]과의 멀어지고 인연을 끊는다. 어쩔 수 없는 관계라면 가급적 연결고리를 없애고 같이 있는 시간을 줄이고, 약점을 보이지 않도록 조심하고, 자신을 내보이는 이야기를 피한다. 더 이상 인맥을 소개하거나 단골집에서 만나거나 하지 않으며, 공유할 소재를 만들지 않는다. 특히 SNS 관계를 블럭하거나 친추해지 등으로 정리한다. 그럼으로써 [정체성 도둑]이 베낄 대상을 감추고, 한편 역전된 관계라면 잘난척과 자랑 소식을 안보게 차단하는 것이다.

 베낄 대상이 없어진 의식적 [정체성 도둑]은 샘솟던 개성이 점점 고갈에 허덕이면서 동경의 대상과 분리불안을 겪으며 이제는 꾸며왔던 자신이 아닌 잊혀졌던 자신을 꺼내야 하니 방황하거나 새롭게 쓸만한 정체성으로 갈아탄다. 

 한편 [정체성 도둑]을 떨치기 위해선 원래 '나답게'로 돌아가 열심히 자신을 가꾸는데 집중한다. 우열을 가리려는 경쟁심리가 강할 수록 초조해지고, 비교열위에 안절부절 못하게 되고 좌절감이 든다. 열등감을 세련되게 갈고닦아 진짜인척 하는 한낱 따라쟁이1로 취급하려면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하여 비교우위가 아닌 대체불가능으로 만들든가, 노력해서 가짜에 흔들리지 않는 내가 되어야 한다. 진짜가 제일 반짝인다는걸 증명하는 수 밖에 없다. 그게 누구에게나 보여지는 방법이든, 내 스스로가 인정하는 방법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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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율리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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